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잉베이 말름스틴 (문단 편집) ==== 싸구려 속주광? ==== '''"말름스틴은 완급 조절을 모르고 연주에 필(Feel)을 가미할 줄 모르는 '싸구려 속주 [[기타리스트]]'다. 존경 받는 건 속주를 숭앙하는 한국이나 일본 같은 아시아일 뿐, 본토에서는 별로다?"''' 시대가 지나고 말름스틴이 이러한 억울한 평을 받아 [[기타]] 좀 빨리 연주하는 [[돼지]] 정도로 비웃음거리가 되는 때도 많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사람의 데뷔 앨범 [[Rising Force]]는 (물론 이쪽 바닥 한정해서)'''[[지미 헨드릭스]]의 [[Are You Experienced]]나 [[밴 헤일런]]의 [[Van Halen(앨범)|Van Halen]]급으로 전설로 회자되는 혁명적인 앨범'''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다. 기타 당시 대중음악계의 주류였던 하드록의 과도기를 넘어서서 기타가 가진 연주능력의 한계와 스타일을 대폭 확장하여 연주의 판도를 뒤집어 엎은 명반으로 기타 속주 연주의 계보를 논할 때 이 앨범이 없이는 시작조차 성립이 안 될 정도이다. 해외에서는 평이 아시아 만큼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헤비메탈]]계에서 잔뼈가 굵은 명인 기타리스트 [[잭 와일드]]가 말름스틴의 자서전에 썼던 평을 읽어보자. > "세상에는 좋은 [[기타리스트]]들이 많고, 또 위대한 기타리스트들이 있다. 하지만 그 위에는 '''판도를 바꾸는 이'''가 있다. [[지미 헨드릭스]]와 [[에디 밴 헤일런]]이 그랬듯이, 잉베이도 그 중 하나다. 단순히 연주력의 완성도, 컨트롤, 장인정신의 이유가 그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의 프레이징, 비브라토, 톤, 그의 '''필링'''과 열정이 전체적인 음악성에 녹아들어 그를 특별하고 독특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른 기타리스트들은 그저 빨리 연주하기만 하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지 않지만, 잉베이는 다르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바흐]], [[루트비히 판 베토벤|베토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모차르트]], [[안토니오 비발디|비발디]]와 [[니콜로 파가니니|파가니니]]가 21세기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궁금하다면 그 이상 찾지말라. 그들의 모든 것이 잉베이의 음악에서 숨 쉬고 있고, 또 웃고 있다." 말름스틴이 [[토니 매칼파인]]이나 [[크리스 임펠리테리]], [[에디 밴 헤일런]] 등과 함께 속주 기타의 시대를 열었고 또 속주 [[기타리스트]]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명장인 건 맞고, 유니크한 기타톤과 플레이, 음의 배치가 중시되는 현재에 봐도 잉베이는 독보적인 부분이 많다. 프레이즈가 한정적이라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속주를 빼고 봐도 잉베이는 초고수 반열에 드는 [[기타리스트]]다. 2004년도 G3 공연 당시 [[조 새트리아니]]는 인터뷰에서 '솔직히 테크닉만큼은 우리 셋([[스티브 바이]], [[조 새트리아니]], 잉베이 말름스틴) 중 잉베이가 가장 뛰어나다'라고 했을 정도다.[* 여담으로 G3 중 가장 어리다. 조 새트리아니 - 1956년생, 스티브 바이 - 1960년생, 잉베이 말름스틴 - 1963년생.] 무엇보다, 그 정도로 기교가 요구되는 곡을 잉베이만큼 라이브에서 완벽하게 뽑는 기타리스트는 드물다. 그런 점은 사실 대중음악의 아티스트들 대부분과는 수준차가 나고, [[클래식(음악)|클래식]]쪽의 전문 연주자와 비교되어야 할 정도다. 잉베이 본인 역시 클래식 연주자와 같은 대우를 받기를 원하고 있고...[* 그리고 본인의 매너리즘에 대해서 그렇게 변명하고 있다.] 또 말름스틴이 억울하게 욕 먹는 부분은 바로 필도 없고 무조건 빨리 연주하는 게 미덕인 줄 아는 [[기타리스트]]라는 평이다. 전혀 그렇지 않은게 1984년에 나왔던 데뷔 앨범 Rising Force만 들어봐도 잉베이의 곡들은 전체적으로 빠른 솔로잉이 자주 등장하는 편이지만, 기타를 연주한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겠지만 잉베이는 노트의 강약조절을 상당히 잘 하는 편이다. 종종 느린 부분의 솔로나 인트로 파트도 비브라토와 노트배치를 적절히 잘 활용하여 느릿느릿하게 연주하면서 필링을 가져가는 경우가 많은데 과거에 잉베이가 10대 시절에 녹음한 블루스 데모 테입을 들어보면 속주에만 치중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어떤 노트와 진행까지 고려해서 연주해야 하는지 기본이 확실히 정립되어 있고 상당히 그루브하게 연주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잉베이의 스타일이 빠른 솔로를 선호해서 그런거지 잉베이는 기본적으로 느린 곡도 잘 연주하는데다가 당시에 기타리스트들이 갖지 못한 대단한 속주 테크닉까지 갖춘 기타리스트라는 점이다. 또한 1집에 수록된 Icarus Dream Suite, Evil Eye, Black Star 등등을 보면 기존의 대중음악이 갖추지 못한 클레식 음악을 재해석하여 자기만의 음악으로 가공하여 내놓은 것에 대해서 당시에도 에드워드 반 헤일런이라던지, 랜디로즈 등장때도 기타계에도 상당한 충격이 있었지만 잉베이의 등장은 그와는 전혀 다른 수준의 충격으로 다가왔으며 당시 기타리스트들 사이에서도 잉베이의 등장은 상당한 영향력을 가져다 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1986년 전세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던 메탈 밴드들이 Hear n' Aid - We're Stars 라는 곡을 공동작업 할때도 잉베이는 기타리스트 자격으로 혼자 녹음에 참여했는데 당시 기타리스트들 사이에서도 잉베이는 굉장히 주목받았고 믿을 수 없이 뛰어난 기타리스트라고 칭송이 자자했다. 그만큼 잉베이는 데뷔 이후 80년대 중후반부터 엄청나게 인정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디테일하게 보면 잉베이의 음악이 단순히 솔로만 무차별적으로 연주하는게 아닌 곡의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멜로디가 아름다운 곡이 많다 대부분 잉베이를 신날하게 비판하는 사람들은 잉베이의 고차원적인 테크닉과 음악세계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그리고 이 '필'이라는 것도 상당히 애매한 개념인것이, 비판자들이 항상 말름스틴을 까면서 [[에릭 클랩튼]], [[비비 킹]] 등등 서정적이고 느릿한 블루스 연주에 강한 선배 기타리스트들을 들먹인다. 만약 그렇다면 필이라는 것이 클래시컬 선율을 하모닉 마이너 스케일로 속주 연주하면 없는 것이고 펜타토닉으로 느릿하게 연주하면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프란츠 리스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같은 [[피아노]] 작곡/연주자들의 음악에는 그들이 주장하는 필이 없는 것인지? 물론 록 자체가 클래식과 똑같은 기준을 지녔다고 보긴 힘들기 때문에 즉흥성과 연주자의 개성은 제쳐두고 지나치게 빠른 속주,딱딱 떨어지는 정확한 기교만을 절대적으로 중시하는 태도 또한 잘못된건 마찬가지다. 일단 록, 로큰롤의 근본적인 기원과 정신에 대해 생각해보자. [[척 베리]]와 더불어 로큰롤의 전설중 한명인 로큰롤 피아노 연주자 '리틀 리차드'는 클래식과 로큰롤의 피아노연주는 다르다고 주장하며 피아노에 발을 올리고 쿵쾅거리며 거칠게 연주했다. 이들은 매우 빠르고 정확한 기교와 테크닉보다는 블루스적인 필(즉흥성과 개성)이나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 저항정신 등을 강조했다. 그러나 록의 관점에서 본 록 특유의 '필'이라는 개념이 즉흥성이나 연주자가 지닌 개성,창의력 등이 연주에 드러나는것이라면 잉베이는 엄밀히 말해 그닥 비판받을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비판 항목에 서술된 잉베이의 "프레이즈를 돌려쓰고 똑같은 톤 등 매너리즘에 빠진 연주"가 위의 비판에 기름을 부었다고 볼수도 있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잉베이가 상대적으로 약간 그런 경향이 있다는것이고, 사실 즉흥성,개성 면에서 잉베이는 보통 기타리스트보다 뛰어나면 뛰어났지 결코 뒤떨어진건 아니다. 그리고 위의 유년시절 항목에서 알수있듯 잉베이의 음악적 뿌리와 지향점은 블루스, 로큰롤보다 클래식에 훨씬 더 가깝다. 좀더 정확히는, 사실 잉베이 이전까지 모든 일렉트릭 기타리스트의 뿌리는 [[지미 헨드릭스]]부터 시작하는 [[블루스]],[[로큰롤]] 기타리스트들였고 지금도 대다수의 기타리스트는 지미 헨드릭스의 프레이즈를 익히며 블루스의 필을 기본으로 자기 음악을 쌓아간다. 잉베이는 선배 리치 블랙모어에서부터 시작해 에디 밴 헤일런이후 완전히 본궤도에 올라온 '''블루스,로큰롤 영향력 없이 순수하게 정통 클래식 음악을 뿌리로 삼는''' 근본부터 완전히 다른 기타리스트인 것이다. 그래서 블루스의 근간인 즉흥, 필, 그루브(나쁘게 말하면 뽕)보다는 장인적인 정확성,테크닉과 멜로디를 좀 더 중시하는게 잉베이로썬 오히려 당연한 거다. 굳이 '록 기타연주자'라는 테두리가 아닌 '기타 연주자'라는 포괄적인 개념에서 보자면 잉베이는 단순히 뛰어난 기타리스트가 아니라 상술한 리치 블랙모어,에디 밴 헤일런의 계보를 넘어 완전히 블루스,로큰롤에서 독립한 새로운 종류의 기타리스트인 것이다. 그래서 어찌보면 잉베이 본인의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록,메탈씬에서 블루스,로큰롤 시대에 만들어낸 기본기와 사상을 연마하며 실력을 키우는 기타리스트들이 대다수인데, 잉베이란 음악가의 근본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그의 표면적인 스피드와 기교만을 숭배하고 따라하는 후배 기타리스트들의 행태가 이같은 부당한 오해와 까임을 만들어 낸 것이라 볼수 있겠다. 속도적인 측면에선 최근엔 그를 능가하는 속주 [[기타리스트]]도 많이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의 능력은 [[외계인]]급이라고 얘기한다. 기타를 연주하는 연주자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오른손 피킹자세가 굉장히 안정적이며 과한 움직임이 없이도 분명하게 연주할 수 있는 교과서적인 효율성을 자랑한다. 또한 기타리스트들 사이에서도 인정받을 만큼 굉장히 훌륭한 비브라토를 가졌다는 점인데 수많은 기타리스트들 (거스리 고반, 폴 길버트, 잭 와일드 등)도 잉베이의 비브라토가 매우 훌륭한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비브라토는 일정 수준에 오른 프로급 [[기타리스트]]에게 가장 중요한 표현법이다.] 또한 라이브에서도 실수가 거의 없이 연주실력은 완성도가 매우 높으며, 대부분 메인 리프를 제외하고는 매번 즉흥연주로 연주를 한다. 이러한 부분은 대중음악보다는 [[클래식(음악)|클래식]]에 좀 더 가까운 장인적인 면으로 볼 수 있다. 락밴드의 경우 특정 장르[* 기교 자체를 매우 중시하는 프로그레시브 메탈, 아방가르드 메탈, 데스 메탈의 몇몇 하위 장르 등 제외.] 이외에는 곡의 파워, 리듬감, 그루브를 중시하고 세세한 표현에는 신경쓰지 않거나 쓰지 못하는 경우가 꽤 많은데,[* 특히 펑크 쪽에서는 '못하는 게 컨셉'인 경우까지도 왕왕 있다] 잉베이의 경우 밴드보다는 기타 솔로에 가깝다보니 아주 디테일하게 잘 맞는 연주를 수행할 수 있다. 그의 음반을 들을때는 세세한 것 하나까지 신경써야 참맛이 느껴진다. 다만 [[김태원(음악인)|김태원]]은 잉베이 이후 기타리스트들이 많이 망가졌다고 간접적인 비판을 했다. 하지만 정작 김태원은 당시에 자신도 잉베이 말름스틴의 영향력 그늘 아래에 속주 연습을 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 속주와 음악적 스케일을 극복하지 못해 좌절했다는 인터뷰를 통해 밝힌 적이 있었다. 한국은 일본과 유사하게 서구의 블루스가 대중문화에 유입되기 전부터 [[엔카]],[[트로트]]등의 애가(엘레지)가 블루스의 감성이 유입되기 전부터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때문에 록 음악의 발전이 서구와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그로 인해 서구나 일본의 록 씬과는 달리 연주자들의 위치가 지극히 낮고 그로 인해 연주자의 개성이나 톤보다는 연주력과 스킬부터 우선 보고 뽑는 환경이 정착한 점까지 겹쳐 이른바 테크니션에 대한 환상이 다소 높았다. 그로 인해 8090년대 독보적 테크닉의 기타리스트였던 잉베이 맘스틴이 한국의 락 음악계에서 가진 영향력은 매우 컸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런 문제는 같은 시기 미국의 하드 록,메탈 씬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이 영향을 많이 받았던 쪽이 [[LA 메탈]],[[글램 메탈]] 계열로 이 시기 밴드의 속주 경쟁때문에 장르 전체의 질을 떨어뜨렸다는 비판도 크게 받았다. 거기다 하필이면 잠깐의 전성기 이후 너바나의 등장으로 그런지,얼터너티브 록의 등장으로 한방에 쓸려나가버리면서 후대에 실력대비 꽤나 억울하게 비난받은 기타리스트들도 적지 않은 편.[* 미국은 물론 전세계의 미디어에서 헤비메탈 뮤지션을 희화화할때 가장 많이 끌어올리는 이미지인 글램 메탈, LA 메탈의 양아치 컨셉이 잉베이와 같이 묶인 것도 잉베이가 유독 희화화가 심한 이유이기도 했다. 하술하겠지만 잉베이는 어느정도 개인적인 명예때문에 그런 이미지를 고수한 것 뿐이지 글램 메탈이나 LA 메탈과는 1도 관계 없는 사람이다. 그냥 그 시기에 가장 속주에 뛰어난 기타리스트였던 탓에 이들이 잉베이를 쫓아가기 위해 속주에 매달리다가 음악의 질을 훼손하는 상황까지 왔을 뿐이지 그게 잉베이 잘못은 아니니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